많은 성도들은 "언약의 피"를 단순히 죄사함과 연관 짓는다. 언약의 피로 죄사함 받았으니 이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받는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한다. 그것은 심각한 "언약 혼동 오류"이다. 구약의 특정 언약(아브라함 언약)과 신약의 새 언약을 구분하지 않고 혼동하는 오류이다.
왜 그런지 알아보자! 언약(계약)이 성취되려면 여러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아브라함의 언약에는 할례와 같은 특정 조건이 있다. 그러면 신약 성도도 할례를 받고 아브라함의 언약을 체결한 것인가? 그렇치 않다. 신약 성도는 믿음으로 언약을 체결한 것이다.(롬3:25,26) 언약의 체결의 조건이 다른데 어떻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물리적, 국가적 차원의 성취의 복을 받는가? 아브라함의 언약은 동물들을 쪼개어 그 사이로 지나가는 의식(창15장)을 통해 통해 중재되었다. 새 언약도 동물의 피 희생을 통해 중재되었는가? 그렇치 않다.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계약된 것이다.(히 9:15, 눅 11:20)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시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히 9:15)
언약을 이행하는 조건도 다르고, 언약을 중재하는 방식도 다른데 어떻게 우리가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자손, 민족적 복을 받는가?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과 자손의 축복은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에 관한 것이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아브라함을 향한 언약이다. 노아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창조 질서의 보존에 관해 노아에게 주신 언약인 것처럼 말이다. (신약 성도는 신약 성도에게 주신 새 언약의 복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새 언약이 가장 위대한 복이다. 새 언약은 하나님 나라가 우리 심령에 임한 복이다. 성도의 심령이 성령의 전이 된 것이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아브라함을 통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하겠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복에 대한 언약의 궁극적 성취는 신약 성경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봐야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8-14절에 이 축복을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과 연결시킨다. 물질의 복이 아닌 영적인 복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갈 3:14)
창세기 12장 3절에에 언급한 '복'은 히브리어 '베라카'는 단순한 물질적 번영이 아닌 영적, 정서적, 관계적인 것을 포함한 전인적인 개념이다.
즉 아브라함의 복은 신약 성도에게는 영적인 복인 것이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이 세상에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을 통하는 통로가 될 것을 의미한다. 물질적 축복을 강조하는 해석은 "번영주의"로 향하게 하여 성경의 더 깊은 메시지를 놓치게 한다. 성경은 물질이 우상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에 해 자주 언급했음을 기억하라!(마 6:24, 딤전 6:10, 골 3:5)
새 언약의 성도여! 우리는 새 언약의 실질적인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예수님이 중재자이시지 아브라함이 아니다.
중재자는 두 당사자 사이에서 화해와 합의를 이루는 역할을 하는 "평화 협정의 중재자"인 것이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자 완전한 인간으로서 양쪽을 완벽히 대표하시면서 두 나라 사이에 새로운 평화 협정을 제시하신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놀랍게도 중재만 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희생적인 피를 통해 하나님과의 새로운 평화 협정을 맺도록 대가도 지불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우리는 아무런 공로와 대가도 치루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 하나님과 평화 협정이 체결되어다. 할렐루야!
이 협정은 단순한 휴전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전면적인 도래를 의미한다. 이제 모든 믿는 자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된 것이다. (요 14:6, 막 1:15) 그렇다면 성도들은 평화 협정의 준수를 위해서 이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평화 협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 3:20,21)
평화 협정은 단순히 적대 관계의 중단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마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올바른 질서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창조 시 하나님의 원래 의도였던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며 그분의 형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은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자발적인 응답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5)
그것은 바로 "하나님 제일 사랑, 이웃 사랑, 제자도와 사명,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다. 이러한 삶은 곧 그리스도를 통해 맺어진 새 언약의 평화 협정을 이행하는 방법인 것이다. 기억하자!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서 살게 될 때 진정 하나님과의 평화 협정이 계속 유지된다. 그러므로 평화 협정을 유지시켜주는 중재자의 말은 얼마나 중요한가?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 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