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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 플레이에서 네이버 웨일 다운로드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나는 오늘 거짓 정체성을 내려놓습니다.
환경이 나에게 말하는 정체성을 거부합니다.
상황이 나에게 붙이는 이름을 거부합니다.
두려움이 나에게 씌우는 얼굴을 거부합니다.
나는 메뚜기가 아닙니다.
나는 패배자가 아닙니다.
나는 광야에 버려진 자가 아닙니다.
나는 아낙 자손 앞에 무너지는 자가 아닙니다.
겉사람이 말합니다.
"너는 너무 작아. 저 문제가 너무 커. 넌 절대 못 해."
그러나 나는 오늘 선포합니다.
나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나의 정체성은 환경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되었습니다.
나는 오늘 기억합니다.
내 정체성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님을.
내 정체성은 세상이 정한 것이 아님을.
내 정체성은 내 실패가 빼앗아 갈 수 없음을.
나는 선포합니다.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나를 아셨습니다.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나를 택하셨습니다.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나를 그리스도 안에 두셨습니다.
아낙 자손이 나를 정의하지 못합니다.
실패가 나를 정의하지 못합니다.
과거가 나를 정의하지 못합니다.
나는 오늘 선포합니다.
나는 신부가 되고 싶어하는 자가 아닙니다.
나는 이미 신부입니다.
신랑이 내 안에 계십니다.
지금 이 순간 신랑과 교제합니다.
신랑의 음성이 들립니다.
신랑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신랑을 위해 사는 것이 기쁨입니다.
기도가 즐겁습니다. 신랑 앞에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살아있습니다. 신랑의 음성이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설렙니다. 신랑을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신랑이 지금 문 앞에 계십니다.
나는 지금 그 문을 엽니다.
나는 지금 신랑을 맞이합니다.
나는 오늘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미래로 밀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조건부로 받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희망 사항으로 두지 않겠습니다.
이미 주셨습니다.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이미 내 것입니다.
나는 선포합니다.
치유는 이미 내 것입니다.
자유는 이미 내 것입니다.
승리는 이미 내 것입니다.
가나안은 이미 내 것입니다.
아낙 자손이 아무리 커도 하나님의 약속이 더 큽니다.
성읍이 아무리 견고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더 견고합니다.
내가 아무리 작아 보여도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더 크십니다.
우리는 메뚜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패배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지배받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창세 전에 택함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이미 신부의 정체성을 가진 자들입니다.
우리는 약속이 실상으로 살아있는 자들입니다.
갈렙처럼 우리의 마음이 다릅니다.
여호수아처럼 우리의 눈이 다릅니다.
10명이 메뚜기를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을 봅니다.
10명이 아낙 자손을 볼 때 우리는 약속을 봅니다.
10명이 불가능을 볼 때 우리는 이미 이루신 분을 봅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환경이 결정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실패가 결정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사람이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결정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결정하셨습니다.
창세 전에 이미 결정하셨습니다.
우리는 매일 믿고,
우리는 매일 기억하고,
우리는 매일 버팁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정체성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