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광선 목사의 칼럼


 

[기독일보]휴거는 있다고 보는가? 성경적 근거를 말해 달라.

주임재안에 0 836 2022.09.18 04:10

성경에 휴거라는 말은 없지만 휴거에 관련된 말씀은 많이 있다(살전4:17, 마24:31, 마24:40, 막 13:32-37, 눅12:39, 눅 21:34-36, 벧후 3:10, 계 3:3). 그런데 성경 여러 곳에 나오는 이 휴거를 부정하고 상징이나 비유로만 해석하게 된다면 그 외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 기적, 천지창조까지 전부 영적해석이라며 상징과 비유로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게 되며, 그렇게 된다면 기독교는 생명이 없는 종교의 영역에 머물게 된다.

 

 

성경의 상징 해석은 사실 단순하다. 

즉 성경 본문을 보면 그 상징에 대한 해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앗 비유를 보면 예수님이 비유를 하신 이후에 제자들에게 씨를 뿌리는 자는 예수님이며, 가라지를 뿌린 자는 마귀요, 밭은 세상이라고 비유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그러므로 성경본문 전후맥락을 보면 이게 상징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주님께서 휴거를 말씀하실 때 이 말씀은 상징이나 비유로 하신 말씀이 아니다. 상징이나 비유에 대한 성경본문의 해석이 없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4장 42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하시고 깨어있으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시는데 그것은 집 주인이 도둑과 같이 오니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으므로, 깨어있으라는 의미가 상징이 아니라 진짜 주님을 맞이하도록 영적으로 잠자지 말고 깨어있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44절을 보면 더 정확하게 말씀하신다.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즉 깨어있으라는 의미가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주님은 당신이 오실 때가 노아의 때와 롯의 때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하셨다.(마 24:37,39) 그 때에 주님은 휴거와 같은 현상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마 24:40-41)

 

 

노아의 때와 롯의 때는 상징이나 비유의 때가 아니라 실제적인 주의 심판의 때였다. 주님의 다시 오심도 이 때와 같은데, 이 때에 노아와 롯은 심판 가운데서 구원받았듯이 마지막 때, 심판의 때에 성도들 중에도 휴거를 통해 구원 받음을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 말씀들이 텍스트 그대로 생생하게 믿어져서 다 같이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깨어 준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성경을 어떤 학설이나 신학, 교리로 나누게 되면 그것이 절대화가 되어 성경의 본래 의미와는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가장 많이 엄히 경고하신 ‘깨어있으라’는 뜻을 무시하게 될 수 있다. 주님의 경고를 다시 새기셔서 주님 맞이할 준비 하시기를 소망한다.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눅 21:35-36)”

 

 

마태복음 24장의 내용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로마에게 함락당할 것이란 예언이라며 휴거를 부정하는 의견도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본문은 1차적으로는 예루살렘 환란 내용도 포함한다. 실제로 이 환란 경고의 말씀을 기억하고 도피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생명을 얻었다. 그렇지만 3절에 보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즉 성전파괴는 언제 일어날 것이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라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어본다. 제자들이 또 하나의 질문을 하는데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 무슨 징조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 묻는다. 

 

마태복음 24장은 요한계시록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요한계시록은 요한 A.D 90-100년경에 쓰인 책으로 이미 로마 함락이 지난 후에 씌어졌다. 실제로 마태복음 24장의 예언들은 로마 함락 이후에도 아직도 성취되지 않고 있음을 볼 때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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